칼럼 · 고전 읽기
쉬운 금강경 1 — 붙잡지 않고 시작하는 마음
제1분부터 제4분까지, 밥을 먹고 발을 씻은 자리에서 시작된 물음을 따라 모두를 건너가게 하되 붙잡지 않고, 나누되 나눔에 묶이지 않는 마음을 읽는다.
금강경은 특별한 능력을 얻는 장면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밥을 먹고 발을 씻고 앉는 장면, 그리고 마음을 어떻게 두어야 하느냐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 글에서 ‘가장 높은 깨어남’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쉽게 부르는 말이다. 수보리는 묻는 제자이며, 보살은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와 함께 괴로움을 건너가려는 사람을 가리킨다.
본문 풀이
제1분 법회인유분 — 밥을 먹고 자리에 앉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
어느 때 부처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서 큰 수행자 무리 천이백오십 명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식사할 때가 되자 부처는 옷을 갖춰 입고 그릇을 들고 사위성으로 들어갔다. 성안에서 차례로 음식을 얻은 뒤 머물던 곳으로 돌아왔다.
식사를 마치고 옷과 그릇을 정리했다. 발을 씻고 자리를 펴서 앉았다.
제2분 선현기청분 —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합니까
그때 오랫동안 수행해온 제자 수보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두 손을 모아 공경하며 부처에게 물었다.
“존귀하신 분이여, 참으로 드문 일입니다. 여래께서는 보살들을 잘 돌보고 이끌며, 그들에게 해야 할 일을 잘 맡겨주십니다.
선한 남자와 여자가 가장 높은 깨어남을 향해 마음을 냈다면, 그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합니까? 어떻게 다스려야 합니까?”
부처가 말했다.
“좋은 질문이다, 수보리야. 네 말처럼 여래는 보살들을 잘 돌보고 이끌며, 그들에게 해야 할 일을 잘 맡긴다.
이제 자세히 들어라. 가장 높은 깨어남을 향해 마음을 낸 사람이 어떻게 마음을 두고 다스려야 하는지 말해주겠다.”
“예, 기쁜 마음으로 듣겠습니다.”
제3분 대승정종분 — 모두를 건너가게 하되
부처가 수보리에게 말했다.
“크게 마음을 낸 보살들은 이렇게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알에서 태어난 존재, 태에서 태어난 존재, 습기에서 태어난 존재, 변화하여 나타난 존재가 있다. 모습이 있는 존재와 없는 존재, 생각이 있는 존재와 없는 존재, 생각이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존재가 있다.
그 모든 존재를 남김없는 열반, 괴로움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데 이르게 하겠다고 마음을 내야 한다.
그렇게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끝없는 존재를 건너가게 하더라도, 실제로 건너가게 된 중생이 있다고 붙잡지는 않는다.
왜일까? 보살에게 나라는 상, 사람이라는 상, 중생이라는 상, 수명을 이어가는 존재라는 상이 있다면 보살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상(相)은 존재를 특정한 모습이나 틀로 붙들어 이해하는 것과 관련된 말이다.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라는 네 이름은 뒤에서도 반복된다.
제4분 묘행무주분 — 나누되, 나눔에 묶이지 않는다
“또한 수보리야. 보살은 어떤 법에도 머물지 않고 나눔을 행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모습에 머물러 나누지 않고, 소리·냄새·맛·감촉·마음의 대상에 머물러 나누지 않는다. 보살은 이렇게 상을 붙잡지 않으면서 나누어야 한다.
왜일까? 상을 붙잡지 않고 나누는 사람의 복덕은 헤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수보리야, 네 생각은 어떠하냐? 동쪽의 허공을 헤아릴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남쪽과 서쪽과 북쪽, 그 사이의 방향들, 위와 아래의 허공을 헤아릴 수 있겠느냐?”
“없습니다.”
“상을 붙잡지 않고 나누는 보살의 복덕도 이처럼 헤아릴 수 없다. 보살은 가르친 대로 이렇게 마음을 두어야 한다.”
다락뷰의 읽기 — 행동은 남고, 소유하는 나는 느슨해진다
처음부터 어려운 말이 나온다. 모두를 건너가게 하라고 하면서 건너간 존재가 없다고 한다. 이 문장을 아무도 돕지 말라는 뜻으로 읽으면, 바로 뒤의 나눔도 이해하기 어렵다.
다락뷰는 여기서 행동과 소유를 나누어 읽는다. 돕는 일은 한다. 그러나 ‘내가 구해준 사람’, ‘나 때문에 달라진 사람’이라는 표를 상대에게 붙이지는 않는다. 나눔을 내 존재의 크기를 증명하는 장부로 만들지 않는 것이다.
다락뷰가 네 가지 상을 ‘나라는 틀’, ‘너와 나를 가르는 틀’, ‘나는 아직 모자란 존재라는 틀’, ‘살아온 시간에 매인 틀’로 풀어보는 것도 이 생활의 자리에서다. 이것은 다락뷰의 적용 언어이며, 네 한자어의 유일한 사전적 뜻이라고 제시하지 않는다.
또한 다락뷰는 이 문제를 좋은 인간관계의 요령으로만 보지 않는다. ‘주는 나’와 ‘받는 너’가 존재 전체를 설명하는 최종 구분인지 묻는다. 상위 차원의 질서를 함께 생각하는 세계관도 이 질문의 배경에 있다. 다만 이 네 분에서 곧바로 빛이나 차원의 작동 원리가 설명되었다고 덧붙이지는 않는다.
마음을 어디에도 두지 말라는 말과 마음을 내지 말라는 말은 다르다. 첫걸음은 차라리 단순하다.
도울 수 있는 일은 하되, 그 일로 나와 상대를 오래 묶어두지 않는 것.
오늘 해볼 한 가지
최근에 누군가를 도운 일을 하나 떠올려보자. 그 행동 자체와, 그 뒤에 기대한 인정이나 보답을 따로 적어보자. 기대가 있었다고 자신을 꾸짖기보다 두 가지가 서로 다른 것임을 알아차려본다.
이 편의 말
‘나눔’은 보시의 쉬운 표현이다. ‘복덕’은 선한 행위와 관련된 복과 공덕을 가리키는 경전의 말로 남긴다. 이를 돈이나 차원별 에너지 점수로 환산하지 않는다. 알·태·습기·변화라는 분류도 경전의 전통적 존재 분류이며, 현대 생물학의 분류표로 제시하지 않는다.
원문 근거
제1분 법회인유분 — 「飯食訖,收衣鉢,洗足已,敷座而坐。」(반사흘 수의발 세족이 부좌이좌)
제2분 선현기청분 — 「應云何住?云何降伏其心?」(응운하주 운하항복기심)
제3분 대승정종분 — 「實無眾生得滅度者。」(실무중생 득멸도자)
제4분 묘행무주분 — 「菩薩於法,應無所住,行於布施。」(보살어법 응무소주 행어보시)
다음 읽기: 「쉬운 금강경 2 — 보이는 모습이 전부는 아니다」
다락뷰의 금강경 읽기 · 쉬운 금강경 1





